이꽃님 작가의 《죽이고 싶은 아이》를 읽었다. 사실적이고 섬세한 심리 묘사에 또 뒷통수 한 대를 맞은 느낌이었다. 작가는 사춘기 청소년인가? 작가는 어떤 사람이길래 청소년의 심리를 어쩜 이렇게 잘 그려낸단 말인가.

《죽이고 싶은 아이》는 이 시대의 현실 문제를 매우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병 든 사회를 그대로 마주하게 되어 불편함마저 느꼈다.
혐오를 가르치는 사회
함께 수업하고 생활하던 친구가 죽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런 학생들의 상처는 안중에 없다. 학생들로부터 제보받을 자극적인 방송거리에 집중하거나 학생들이 불안하여 학업에 중요한 시기를 허투로 보낼까 불안한 마음뿐이다.
아이들은 내팽개쳐졌다. 두렵고 슬플 텐데 상대를 맘껏 욕하면서, 의심하면서, 동조하면서 자기 마음을 푼다. 아직 증언의 무게감을 배우지 못한 채 주목받는 데 집중된다. 재생산 되는 기사, 그 밑에 달리는 악플들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버려진 아이
의심 받고 갇혀 있는데 부모라는 사람이 들여다 보질 않는다. 아이를 믿고 지지해 주기는커녕 자기 인생에 오점을 남긴 존재로 원망한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라는 대사에 사랑과 신뢰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니. 마음이 답답했다. 아이는 심리적으로 이미 버려졌고 또 버려질 것에 두려움이 가득하여 들은 얘기를 지워 버린다. 약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가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이 부모를 얼마나 미안하게 만드는가. 왜 약한 사람이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가. 가난이 선이고 부가 악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가난이 약한 것은 맞다. 빌어먹을 자본주의는 가난한 사람을 자식에게 미안해야 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나도 사춘기를 나름 심하게 겪었다. 이꽃님의 《죽이고 싶은 아이》에 나오는 아이들 마음이 너무 공감되어 힘들었다.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병든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함마저 느꼈다.
작가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토록 아이들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작가는 인물에 책임져야 한다.
작가의 말이 오래오래 머릿속에 머물렀다. 이꽃님 작가는 《죽이고 싶은 아이》에서 자기 소임을 다했다. 대단하다. 작가로 인해 인물이 실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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