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만 쌤의 책 읽기/세계 문학 읽기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경만쌤 2025. 1. 26. 18:19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안 읽혔다. 지루했고 길었다.

다만 감상에 젖었고 단지 읽어내야 했다.

 

두 번째 읽기.

 

스카웃과 딜의 모습은 나와 오빠의 유년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추억에 빠졌고 남매의 우애에 빠져들었고 둘의 감정선에 매우 크게 공감하였다.

 

그.러.나.

생각해 볼 거리가 너무나 많은 작품이다.

1930년대 미국의 남부지방에 뿌리 깊었던 인종차별과 편견을 주 골자로 다루고 있다.

15년째 은둔 생활을 하는 아서 래들리. 어린 시절의 잘못으로 집에 갇히고(?) 괴 소문을 양상한다. 동네 어른들은 래들리에 대한 험악한 소문을 사실 확인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퍼뜨린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아서 래들리는 동물의 날것을 먹는 존재였다. 공포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무 옹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들을 주고 소설 말미에는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기까지 한다. 래들리가 집안에만 있었던 것은 타의였을까, 자의였을까.

 

흑인에 대한 차별.

백인 여성을 돕던 흑인이 강간범으로 몰린다. 정황상 외로웠던 백인 여성이 흑인을 유혹하다 거절당했고 이 상황을 한량 아버지께 들킨다. 곤경에 처하기 싫은 흑인은 도망쳤고 아버지는 딸을 구타한 후 흑인을 고소한다. 내 딸을 덮치고 때렸다고. 이 흑인(톰 로빈슨ㅡ이하 톰이라고 하자.)의 변호를 맡은 애티커스 핀치는 단지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가문의 수치이자 마을의 부끄러운 존재가 된다. 애티커스 핀치는 스카웃과 젬의 아버지로 남매는 덩달아 '아버지가 깜둥이의 애인'이라는 놀림과 모욕을 당한다. 흑인은 백인으로부터 정당한 변호조차 받을 수 없는 것인가. 톰의 재판에서 검사는 톰에게 도망의 이유를 묻는다.

 

 

이러한 상황이 올 게 두려웠죠. 흑인이라면 누구나 저처럼 했을 것입니다.

톰의 이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다. 흑인이라면 누명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흑인 스스로가 말하고 있다.

톰은 백인 여성 메이엘라를 왜 도와줬냐는 질문에 그녀가 불쌍해 보였다고 답한다.

검사는 이 답을 재차 강조했고 백인들로만 구성된 배심원들에겐 이 말이 모욕이었을 것이다.

 

감히, 흑인 주제에 백인을 불쌍히 여겨?

 

결국 톰은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되었으나 탈옥을 시도하다가 총살 당한다.

 

17발의 총알을 받은 채. 그렇게 전형적인 흑인의 죽음을 맞이한다.

배심원들은 흑인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애티커스가 밝힌 사건의 진실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메이콤이라는 작은 마을은 배심원들과 입장이 같았다.

 

이에 굴욕감을 느낀 비열한 한량 밥 유얼(딸을 때리고 톰을 고소한 자)은 애티커스를 협박하고 할로윈 축제를 마치고 밤 늦게 귀가하던 젬과 스카웃을 덮친다. 그러나 이때 아서 래들리가 나타나서 아이들을 구해준다. 의식을 잃은 젬, 할로윈 의상과 어둠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던 스카웃. 그리고 바깥 세상이 낯설고 두려운 아서 래들리.

 

애티커스는 보안관에게 신고하고 보안관은 사건의 현장에서 칼에 찔린 채 죽어 있는 밥 유얼을 발견한다. 밥 유얼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짓는 보안관과 그를 반대하는 애티커스는 논쟁을 벌이다가 애티커스도 결국 보안관의 말에 동의하고 소설은 끝이 난다.

 

픽사베이, 정의

전형적인 흑인의 죽음, 탈옥을 시도하다가 총살 당한 톰 로빈슨을 바라보는 애티커스 핀치의 마음은 어땠을까?

애티커스 핀치는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 변호를 했다. 아이들까지 피해자가 됐다. 그런데 톰 로빈슨을 그를 믿지 못했다. 아니, 백인을 믿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안을 바라보는 애티커스 핀치의 마음은 어땠을까? 모든 것을 감수하고 최선의 변호를 맡은 자로서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과연, 보안관의 판단은 옳은가?

 

보안관은 사람이 죽은 사건의 진실을 덮었다. 자의적인 해석을 믿으며 사회적 약자, 선량한 사람을 코너에 몰 수 없다는 양심적 판단으로 죽은 자의 죽음의 이유를 묻어 버렸다. 죽은 자가 악인이고 죽인 자가 선한 사람이라면 이 사건의 진실은 묻혀도 되는가? 

 

애티커스 핀치의 행동은 옳은가?

 

처음에 애티커스 핀치는 본인의 아들인 젬이 밥 유얼을 죽였을 거라 생각하고 핵 테이트가 사건을 묻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보안관 핵 테이트 말에 설득되고 만다. 그러면서 암묵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이것은 과연 옳은가? 애티커스 핀치는 언제나 정의와 양심에 따라 살 것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마음이 앞서 버렸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지 않는 것은 변호사인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백인의 입장에서 흑인을 변호하는 것, 백인은 흑인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애티커스의 생각에 문제점은 없는가?

 

애티커스 핀치는 흑인을 돌봐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약자로 인식한다. 물론 그 시대의 관점에서는 그게 맞다. 그러나 백인이 흑인을 도와줘야 하고 흑인은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약자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으면 인종 차별 또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그들을 동등하게 여겨줘야 인종 차별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다. 반면 흑인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이 사회에서 이들을 동등하게 대하기 시작하면 이들의 삶은 더 힘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과연 흑인을 대하는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할 것인가?

 

등의 생각해 볼 문제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이외에도 나는 또 하나. 애티커스 핀치와 아이들의 관계가 매우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아이들과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실천하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결코 감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혼내는 법이 없었으며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무한 신뢰하며 밝고 바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러한 성장과정을 겪은 자만이 쓸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었다.

 

문학은 각자에게 각각의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오빠를 추억했고 엄마로서의 나를 돌아봤고 우리 아이에 대해 생각했다.

또한 사람이 갖는 편견, 모이면 암묵적인 계층을 이루는 모습, 거기서 오는 차별에 대해 씁쓸함을 느꼈다. 규범을 거스르면서까지 양심을 지킨 애티커스 핀치마저도 마음 한편에는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