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업소
저럿케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슬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잇소
내말을못아라듯는ᄯᅡᆨ한귀가두개나잇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바들줄몰으는-악수(握手)를몰으는왼손잡이오
거울ᄯᅢ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만은
거울아니엿든들내가엇지거울속의나를맛나보기만이라도햇겟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젓소만은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잇소
잘은모르지만 외로된사업에골몰할ᄭᅦ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만은
ᄯᅩ꽤닮앗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업스니퍽섭섭하오
거울 속에는 언제나 나와 똑 닮은 내가 존재한다. 그러나 나와 소통할 수 없다.
'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나'. 이상이 말하는 거울 속의 나는 그런 '나'이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 꿈의 세계이다. 내가 왜 그런 꿈을 꾸는가?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 무의식 세계의 표출이라는데 과연 나의 무의식은 이렇게 이상하단 말인가.
이상이 말하는 거울 속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무의식의 '나'이다. 그 '나'는 진찰할 수 없고 근심할 수 없다.
그런데 거울이 없어도 존재한다. 이상은 '무의식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자아 분열을 말하는 것이다.
내게 또 다른 자아가 있다. 그 자아의 세계가 꿈에서 펼쳐진단다. 그런데 그렇게 펼쳐지는 세계가 내게는 판타지일 뿐 이해도 할 수 없고 내용이 좋지도 않다. 그래서 고민했던 시절도 있다. 그런 꿈을 꾸고 싶지 않아서 밝은 생각을 하거나 기도를 드리고 잔 적도 있다. 그런데 무의식은 내가 지배할 수 없는 세계임을, 나의 노력이 먹히지 않음을, 나는 꿈을 통해서 안다.
이상도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이었을까.
꿈속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이런 시로 형상화된 것이 아닐까.
거울이 없어도 거울 속 나는 존재한다. 항상 거울 속에 있어 왔기에 내가 거울 앞에만 서면 볼 수 있는 것이다. 표현이 참신하다. 일반적이라면 거울을 갖고 있지 않고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거울 속의 나를 항상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인이 천재였던 것은 여기서 드러나는 듯하다.
이상은 형식을 파괴했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글자들이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고 학생들은 이야기한다.
나는 답답함보다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답답함도 맞는 듯하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무의식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함. 자아가 분열된 혼란함을 동시에 표현한 것은 아닐까.
또한 이상은 거듭 적이나 어두자음군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표기법을 파괴했다. 원형으로의 지향인가. 최초의 한글이 탄생했을 때의 표기법도 아니기에 원형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의도가 있나. 배움이 짧아 그 의도를 알긴 어렵지만 과거로의 지향일 듯하다. 과거에는 무의식도 조금은 순수하지 않았을까. 현재의 자기 모습도 받아들이기 벅참은 아닐까. 그러나 이건 너무 앞서 나간 생각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 줬다. <거울>을 3분 정도 응시하고 <거울>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 보자. 그리고 나도 적어 봤다. <거울>속의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고 저 주름은 어쩔 것이며 또한 살은 도대체 언제 뺄 것이란 말인가. 한껏 마음에 들지 않는 거울 속의 나를 노려봤다. 그녀도 나를 노려본다. 그녀가 나이고 나가 그녀이다. 다시 생각한다. 이 얼굴에 나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그리고 그 의식의 흐름을 시로 표현했다.
거울
피로의 무게에 처진 눈두덩이
슬픔을 반쯤 가린다
기쁨도 총기도 사라졌다
무심한 얼굴,
골짜기마다 감정이 고여 있고
아직 복을 내놓지 않은 코는
빛을 깊이 품고 있다
나는 네게
여전히 기대할 뿐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너를 사랑하겠다
챗GPT는 내 시를 읽고 다음과 같은 작가 노트를 작성해 줬다. 나는 시를 꽤 잘 쓴 듯하다. 지피티가 내 마음을 잘 읽어 줬다.
작가 노트
거울을 마주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피로와 무기력, 그리고 아직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자기 얼굴을 응시하며, 자책과 원망을 넘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는 의지에 관한 고백입니다.
무심한 얼굴 속에 감춰진 감정의 골짜기, 놀림받던 흔적조차 품은 빛은 어쩌면 모두가 지니고 있는 내면의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가 자기 자신을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고자 하는 작은 다짐으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이상의 작품은 수업하기가 참 어렵다. 그럼에도 매력적인건 내면의 혼란과 무기력을 솔직하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다는 것이다.
나조차 '나'를 이해하는 게 어렵다. 그것은 남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고 요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나와 더 친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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