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만 쌤의 책 읽기/우리 문학 읽기

《시한부》를 읽고 – 사춘기의 비와 눈, 그리고 자책

경만쌤 2025. 9. 14. 12:40

 

나도 하늘이 예쁜 날을 사랑한다.
수아처럼 맑고 눈부신 날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날이 그렇게 우울할 수도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나는 보통 추적추적 비 오는 날이 우울하다.
산속에서 비 오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느꼈던 쓸쓸함이 있다.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쓸쓸했다.

그렇다면 수아는 비 오는 날을 어떻게 느꼈을까?
《시한부》 속에는 맑은 날과 눈 오는 날의 감성만 있었을 뿐, 비 오는 날의 수아는 없었다.


수아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나도 한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며, 끝없는 우울과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을 경험했기에… 수아가 너무 안쓰러웠다.

쓸쓸하고 안쓰럽다 못해, 나까지 죽음이라는 늪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친구의 죽음을,
그 어린 사춘기 소녀가,
그것도 눈앞에서 목격해야 했다는 건 상상만 해도 미칠 것 같은 감정이다.

그때의 공기, 소리, 장면들… 끝없는 자책.
내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사춘기 시절, 나에게 우정은 전부였다.
친구는 세계였고, 삶의 이유였다.

그래서 수아의 마음이 너무나 공감됐다.


요즘의 나는 '자책 인형'이었다.
동료들을 침몰하는 배에 태운 것 같은 자책, 남편에게 불운을 옮긴 것 같은 죄책감.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를 두 번째로 옮기고 있다는 죄책감까지.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걸까.
그 절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자식뻘인 백은별 작가가 그 절망을 나 대신 고백하고 있었다.

낯설도록 정서적인 친밀감.
혹시 내가 아직도 마음이 어린 걸까.
또 자책할 빌미를 만들어낸다.


나도 눈이 오면 아프다.
핏줄 같던 친구를 보내던 날, 눈이 펑펑 내렸다.
눈물도 펑펑 흘렀다.
그 이후로 눈만 오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중년인 나도 그런데,
15살의 수아는 오죽했을까.
게다가 스스로 떠난 가장 친한 친구였다면…


내 친구는 사고사였다.
전날 밤, 깔깔거리며 영상통화를 했던 친구가 그 다음날 뉴스 속 주인공이 되었다.

처음엔 몰랐다.
‘참 별일이다, 큰일이네’라고 생각했지 내 친구 이야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출근하고 퇴근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언니로부터 부고를 듣고 사지가 떨리며 울었다.


《시한부》는 그런 나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먼저 떠난 윤서의 마음도,
남겨진 수아의 자책과 우울도…

너무나 이해돼서, 속으로 울며 끝까지 읽었다.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교사로서
반성하며, 미안해하며, 수아가 살기를 바라며 읽었다.

수아가 살아야 이 책을 내 학생들에게 권할 수 있었다.


백은별은 토해내듯 글을 써내려갔다.
15살의 필력이 믿기지 않는다.
솔직히… 나보다 잘 썼다. 분발해야겠다.

자전적 소설이 아니기를 바랐다.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은 화석이 된다.
그 화석이 나를 이 땅에 묶어두는 이유 중 하나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엄청난 공감과 함께, 어떤 위로를 받을까.
혹은 더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엄마로서, 교사로서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내 생각만 주장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그 결심을 했다.


📚 백은별 《시한부》
📖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 그러나 어른도 깊이 울게 한다.